[일상] 뭣에 쓰는 물건인고? 생김새는 망측 씹는 맛은 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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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담패설 [飮啖稗說]
‘바다의 고환’ 개불
호화로운 유람선 파티.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톱배우 천송이(전지현)에겐 스테이크도 푸아그라도 캐비아도 눈에 차지 않는다. 허기진 그가 찾는 것은 개불 한 접시에 소주다. 스테이크를 썰던 동료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천송이는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물가에 왔는데 그 정도는 먹어줘야 하는 거 아냐?” 2013년 방영됐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치맥’ 등 ‘K먹방’을 세계에 알리는 첨병이 됐다. 그중 개불도 빼놓을 수 없다. 생김새에 이름까지 범상치 않은 이 해산물은 방송 직후 노량진 수산시장을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이게 만든 주역이 됐다.
개불은 횟집에서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 주로 사이드 메뉴로 먹는 해산물이다. 따로 한 접시 시켜 소주 안주로 삼기도 딱이다. 쫑쫑 썰려 접시 위에 오른 진한 핑크빛 개불의 매력은 쫄깃한 식감에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달큼함이 배어 나오는 그 맛도 일품이다.
개불은 손질되기 전후의 모습이 판이하다. 큼직한 대야나 수조에 담겨 있는, ‘살아 있는’ 개불의 모습은 거북살스럽다. 머리도 꼬리도 따로 없는, 뭉툭한 원통형 몸체는 마치 개의 ‘거시기’처럼 생겼다. 징그럽고 흉측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개불인 건가. 맞다. ‘개의 불알’처럼 생겼다고 ‘개불’이다.
목포대 국문과 교수인 시인 김선태의 시 ‘개불’은 개불의 생김새와 특징, 맛을 눈앞에 그리듯 생생히 보여준다. “남해안 바닷가 횟집엘 가면 요상하게 생긴 횟감이 있지요. 얼른 보면 큰 지렁이 같기도 하고 무슨 동물의 창자 같기도 한 이놈의 이름은 개불. 개의 불알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자세히 보면 개좆같습니다…”
‘개의 불알’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
전남 강진·여수 등 청정 갯벌에 서식
회칼로 내장 제거 후 쫑쫑 썬 한 접시
쫄깃한 식감, 씹을수록 달큼한 ‘별식’
고려 말 요승 신돈은 ‘정력제’로 즐겨
지역 따라 삼겹살과 함께 구워먹기도
과거엔 횟집 서비스 메뉴로 흔했지만
포획량 급감, 일부 도매상 통해 유통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 <우해이어보>에선 개불을 일컬어 ‘해음경’이라 했다. <우해이어보>는 경남 진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담정 김려가 쓴 책으로,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11년 앞선 1803년 저술됐다. 이 책에서 언급한 ‘해음경(海陰莖)’은 말 그대로 바다에 사는 음경처럼 생긴 생명체라는 뜻이다. 김려는 “해음경의 모양이 말의 음경과 같다. 머리와 꼬리가 없고 입 하나만 있다”고 썼다. 그렇다면 ‘해음경’은 어떻게 ‘개불’이 됐을까. <우해이어보>를 현대적 관점으로 해석한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 신우해이어보>(최헌섭·박태성 지음)에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김새가 개의 불알처럼 생긴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하지만 음낭인 고환보다는 담정의 말마따나 음경처럼 생겼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둘은 각각 해와 음경, 개와 불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각각 해=개, 음경=불과 등치되어야 한다.”
“바다와 대응하는 개가 동물이 아니라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이르는 개(개흙 또는 갯벌)라면 해음경과 개불은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으며, 실제 개불의 서식지가 조간대의 갯벌인 점도 그렇다. 음경과 대응하는 불도 생식기로 해석한다면 개불은 바닷속 갯벌에서 사는 그렇게 생긴 녀석을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해음경과 개불은 같은 녀석을 이르는 한자 이름과 한글 이름임을 알 수 있다.”
개불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spoon worm’이라고 나오는데 생김새 때문인지 ‘penis fish’라는 말도 쓰인다. 몇년 전 캘리포니아 해변을 개불이 뒤덮었다는 뉴스에선 대부분의 외신이 ‘penis fish’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Thousands of ‘penis fish’ washed up on a California beach.”(CNN 2019년 12월16일), “Thousands of exposed ‘penis fish’ washed up on a beach in California.”(USA Today 2019년 12월13일)
개불의 크기는 10~30㎝ 정도이나 수축하거나 늘어나기도 해 종잡을 수 없다. 몸통을 만져보면 물풍선처럼 말캉하다. 손질할 때 입과 항문이 있는 양 끝부분을 조금씩 잘라내면 불그죽죽한 물과 내장이 와락 쏟아져 나온다. 그러고 나면 몸통은 수축하면서 쪼그라든다. 개불의 몸통이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몸통의 색깔이 분홍빛을 띠고 만져봤을 때 굳은살이 박인 듯 탄탄한 질감을 가진 개불을 골라야 살이 두껍고 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아무리 커도 회색빛이 많이 도는 것은 물로 가득 차 있어 살이 얇고 부실하다. 손으로 집을 때의 거부감만 극복할 수 있다면 개불을 손질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서울 용산구에서 30년간 횟집을 운영해온 작은수산시장 채성태 사장은 “예전만 해도 소수의 마니아들만 개불을 먹었으나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10년 전부터 대중화하면서 여성 고객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불은 주로 날것으로 먹지만 서해안이나 남해안 등 개불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기도 한다”면서 “마늘, 굴소스 등과 함께 볶아 먹어도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불은 청정한 갯벌 지역에서 잡힌다. 전남 강진·여수, 경남 남해·사천, 충남 태안 등이 주산지였다. 하지만 최근 몇년 새 개불 수확량은 크게 줄었다. 수온이 높아지고 갯벌이 오염되는 곳이 늘면서 개불의 생태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강진 사초마을은 10년 전만 해도 개불축제를 열 정도로 품질 좋은 개불이 많이 생산됐다. 하지만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축제도 폐지됐다. 예전에 비해 물량이 많이 부족해졌기 때문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도 개불은 별도로 경매가 이뤄지지 않고 일부 도매상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예로부터 생김새 때문에 정력제로 여겨졌던 식재료는 꽤 많았다. 그런 면에서 개불은 어땠을까. 고려 말의 요승 신돈이 정력 강화를 위해 개불을 즐겨 먹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우해이어보>에 따르면 조선 후기엔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 정도로 여겨졌던 것 같다. 이 책에선 “해음경을 깨끗이 말려 가늘게 갈아서 젖을 섞어 음위(陰·음경의 발기가 잘되지 않는 상태)에 바르면 바로 발기한다고 한다”고 쓰고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음충(淫蟲)’이라는 바다생물이 나온다. 이름하여 음란한 벌레라는 뜻인데 어떻길래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형상은 남자의 성기와 비슷하다. 입이 없고 구멍도 없으며, 물에서 나와도 죽지 않는다. 볕에 말리면 빈 주머니처럼 우그러지고 쭈그러든다. 손으로 쓰다듬으면 잠시 뒤에 몸이 부풀어 올라 땀구멍에서 땀이 나오듯 즙을 내는데, 실이나 머리카락처럼 가늘면서 좌우로 날리면서 쏜다. 양기를 보하는 효과가 크므로 음란한 이들이 말려서 약에 넣는다.”
언뜻 보면 개불을 묘사한 것 같지만 <자산어보>에서 묘사한 음충은 미더덕이다. <자산어보>에 개불에 관한 설명은 나와 있지 않다. 미더덕이 음충이라면 개불을 두고 자산이 어떤 이름을 붙여줬을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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